[판결][단독] "피고인·변호인 통화녹음 압수 위법"
페이지 정보

본문
피고인과 변호인 사이의 통화 녹음파일을 압수한 것은 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중대하게 침해해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조에서는 이번 판결을 두고 법원이 변호사-의뢰인 비밀 유지권(ACP)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앞서 대법원은 의뢰인과 변호인이 주고받은 문서에 대한 압수가 위법하다고 결정한 바 있다.
대법원 제1부(주심 마용주 대법관)는 2월 26일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반포등) 등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A 씨를 유죄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2025도4422).
A 씨는 피해자와의 성관계 중 동의 없이 동영상을 촬영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수사기관은 2차례에 걸쳐 A 씨 휴대전화를 압수 및 포렌식했다.
1차 압수에서 수사기관은 ‘압수할 물건’을 ‘피해자를 촬영한 동영상, 사진 파일’로 한정해 영장을 발부받아 포렌식을 진행했으나 피해자가 촬영된 동영상이나 사진 파일을 발견하지 못했다(1차 영장).
이때 수사기관은 A 씨와 변호사 사이의 통화녹음 파일(이하 녹음파일) 등을 발견했다. A 씨가 피해자를 촬영했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수사기관은 녹음파일을 폐기하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가 두 번째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해당 녹음파일을 압수했다(2차 영장). 이후 검사는 녹음파일을 근거로 변호인과 통화했고, 변호인은 검사에게 A 씨가 동영상 촬영 사실을 전부 인정했다는 점, A 씨가 증거를 인멸하려고 했다는 점, 자신은 사건에 대해 상담만 한 뒤 수임은 거절했다는 점 등을 진술했다. A 씨도 공판기일에 출석해 통화녹음 파일 등 검사가 제출한 증거에 동의했고 원심은 증거능력을 인정해 A 씨에 대해 유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원심이 증거능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변호인 통화녹음 파일은 당해 형사사건에 관해 변호인과 피고인 사이의 의사교환 등이 포함된 것으로서, 이를 압수한 것은 위법하다고 했다. 대법원은 “변호인 통화녹음 파일 압수는 피고인의 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그 위반의 정도가 무겁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와 같은 내용을 판시하며 지난 2월 20일 내린 ‘대법원 2024모730 결정’을 인용했다. 이에 따르면 피의자·피고인과 변호인 사이에 생성된 형사사건에 관한 법률자문 서류 등에 대한 압수는 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을 침해할 소지가 있어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예외적으로 △피의자·피고인이 압수를 승낙한 경우 △변호인이 피의자·피고인과 공범관계에 있거나 피의자·피고인의 위법행위에 관여한 경우 등 중대한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압수가 허용된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사안이 이같은 예외적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한편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통화녹음 파일을 압수하는 과정에서 적법절차를 따르지 않았다고도 했다. 수사기관이 1차 압수 시 ‘압수할 물건’에 포함되지 않았던 통화녹음 파일을 소지·보관하며 수사에 사용하려 한 조치가 위법했다는 것이다. 결국 압수한 녹음파일은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의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한다고 했다. 뒤늦게 법원으로부터 2차 영장을 발부받아 압수했다거나 피고인이 이를 증거로 함에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위법성이 치유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더하여 통화녹음 파일에 터 잡아 이후 수집된 2차적 증거들 모두 위법수집증거라고 판단해 증거능력을 부정했다.
노민호(사법연수원 41기)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대법원이 판결로써 ACP를 인정했다는 점 △의뢰인과 변호인 간 통화 녹음파일 압수를 위법하다고 판단한 데 더해 이에 근거한 2차적 증거들의 증거능력도 모두 부정한 점 △피고인과 변호인이 증거동의했음에도 그 위법성을 중대하게 판단한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2024모730 결정을 이끌어낸 법무법인 광장의 정유철(31기) 변호사는 “이 사안은 적법절차를 따르지 않았다는 점과 별개로 변호인 통화녹음 압수 자체를 위법하다고 판단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또 “변호사-의뢰인 간 비밀유지권(ACP)을 명시한 개정 변호사법 시행과 상관없이 헌법에 근거하여 ACP가 인정됨을 다시 한번 확인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출처] 법률신문 한민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