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근로계약서 써도 일 안 하면 임금 청구할 권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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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계약이 존재한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임금청구권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실제 근로 제공이 있었는지, 계약관계가 언제 종료됐는지 등에 대한 심리 없이 임금 지급 책임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대법원 민사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4월 9일 A 씨가 자신이 근무했던 단체의 이사장 등을 상대로 낸 임금 소송 상고심(2025다219113)에서 원심의 원고 승소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사실관계]
원고 A 씨는 2010년 당시 한 단체의 이사장이었던 B 씨 등 피고들과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기간은 2010년 12월부터 2023년 12월까지로 정했고, 월 기본급 250만 원과 업무추진비 5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후 A 씨는 2017년 12월부터 2020년 8월까지의 체불임금 약 9900만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2020년 12월 피고 측과 확약서를 작성한 뒤 소를 취하했다.
확약서에는 체불임금 지급과 함께 근로기간을 2021년 12월까지로 정하고, 당사자 사이의 민·형사상 분쟁을 모두 종결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A 씨는 약정금 일부를 지급받지 못했다며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이어 별도로 2020년 9월부터 2023년 4월까지의 임금 약 9600만 원 지급을 구하는 이번 소송도 냈다.
[하급심]
1·2심은 모두 원고 A 씨 승소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근로계약이 체결된 이상 실제 근로 제공 여부와 관계없이 임금청구권이 발생한다고 봤다. 이에 따라 B 씨 등 피고들에게 해당 기간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단]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근로계약은 근로 제공과 임금 지급이 서로 대응하는 쌍무계약인 만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실제 근로 제공이 있어야 임금청구권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심이 실제 근로 제공 여부와 근로계약 종료 시점 등에 관한 심리 없이 단지 근로계약 체결 사실만으로 임금 지급 의무를 인정한 것은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판시 취지는 다음과 같다.
-근로계약은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할 것을 약정하고, 사용자는 이에 대해 임금을 지급할 것을 약정하는 쌍무계약이다. 근로자의 임금청구권은 특별한 약정이나 관습이 없는 한 근로를 제공함으로써 비로소 발생한다. 따라서 근로자가 실제로 근로를 제공하지 않은 이상 그 대가관계에 있는 임금청구권을 취득한다고 볼 수 없다. 결국 원고가 실제 근로를 제공했는지에 관한 심리·판단 없이, 단지 근로계약이 체결됐다는 사정만으로 임금청구권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
-원고와 피고들은 근로계약기간을 2010년 12월 5일부터 2023년 12월 5일까지로 하는 이 사건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이 사건 근로계약을 둘러싼 민·형사상 분쟁이 발생하자, 당사자들은 확약서를 작성하면서 연체된 임금 9900만 원을 지급하고 원고의 근로기간을 2021년 12월까지로 정하는 한편, 피고들을 상대로 제기한 민·형사상 법적 조치를 모두 취하하기로 했다. 이는 이 사건 근로계약에 따라 형성된 법률관계를 비롯해 그때까지 발생한 모든 분쟁을 종국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원고와 피고들 사이의 근로계약은 이 사건 확약서에서 정한 2021년 12월경 종료됐다고 볼 여지가 상당하다.
-그런데도 원심은 원고가 실제 근로를 제공했는지, 근로계약 기간이 언제까지 존속했는지에 관해 아무런 심리·판단 없이, 단지 근로계약이 체결됐다는 이유만으로 피고들이 2020년 9월부터 2023년 4월까지의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원심 판단에는 임금청구권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출처 : 법률신문 안재명기자


